2023. 8. 1. 폭염에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1년이 지나서 산재로 인정이 됐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1주기 전에 산재인정이 돼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산재상담부터 인정까지 그 과정을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노조에서 전화 연락
2023. 8. 중순경에 건설노조 전기원 지회에서 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잘 아는 형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 전에 같이 일을 하는 조합원 형님이 폭염에 일하다가 쓰러지셨는데, 산재신청을 알아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쓰러지셨냐고 물어보니, “8월 1일” 일 년 중에 가장 더울 때였습니다. 몇시에 쓰러지셨냐고 하니, “3시반” 가장 더울 때 쓰러지셨습니다. 사인을 여쭤보니, “급성심근경색” 같다고 하시는데, 정확한 것은 가족들이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족들 상담
가족들을 만나서 상담을 했습니다. 업무시간, 업무내용, 스트레스 정도, 사건 발생 당시의 노동조건 등을 물어봤습니다. 가족들은 관련한 내용을 어렴풋이 알았고,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과로사 인정기준을 설명해드렸고, 결국 업무 관련성을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의 부분이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빨리 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빨리 하는 것 보다 구체적인 입증자료를 얼마나 확보해서 질병판정위원회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초 자료 확보
가족을 통해서 회사에 자료를 요청해서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작업일지, 임금대장, 출력일보 등의 자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지금까지 병원에 다녔던 기록인 건강보험요양급여내역, 건강검진 내역, 사망진단서, 병원 의무기록 사본 등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으로 과로성 질환이 인정되는 상병명이었습니다.
업무시간 확인
과로성 질환 인정여부에서 제일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업무시간입니다. 급성과로은 사망 전 24시간 이내, 단기과로는 1주일 이내, 만성과로는 12주 이내의 업무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고인은 오전 일찍부터 일을 하지만 일도 남들 보다 조금 일찍 끝냈고,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등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과로질환에서 과로를 주장하는 업무시간을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했습니다.
기상청의 온도/습도/바람 확인
기상청의 온도/습도/바람 확인을 했습니다. 2023.8.1. 뿐만 아니라 그 이전 1달 정도까지 확인을 했습니다. 33.7도, 습도 73.6% 였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였습니다. 한 보름 전 쯤 비가 온 이후에 찜통같은 더위가 계속 되는 날씨였고, 폭염경보 문자가 8일 연속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그 날은 너무너무 불지 않아서 더더욱 더운 날씨 였는데, 그것을 기상청의 그 지역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 했습니다.
목격자인 동료근로자 면담
고인은 전봇대를 운반해서 설치하는 오거크레인을 운전/운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날 사고도 뜨거운 오거크레인 위에서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내려와서 잠시 쉴 때 쓰러지셨던 것입니다. 그 날 현장에 같이 있었던 동료근로자를 만나서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몇 시에 일을 시작했고, 점심시간은 언제였고, 휴식은 얼마나 취했는지를 물었고, 그 날 특이한 일이 무엇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늘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함.
다른 날들은 그래도 그늘이 있는 지형이었는데, 그 날 전봇대를 세우는 곳들은 그늘이 없는 지형이라서 쉴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쓰러지고 나서도 그늘이 없어서 오거크레인 바로 밑으로 뉘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3, 4번째 전봇대가 난항
사고 당일 고인은 4개의 전봇대를 심어야 했습니다. 오전에 2개, 오후에 2개를 심고, 퇴근을 하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아주 무난하게 땅이 파졌는데, 문제는 오후였습니다. 3, 4번째 전봇대를 심는 땅에서 암반이 나와서 뿌레카로 뚫고, 그 날이 더울 때 한참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사고 난 현장 방문
함께 일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늘과 3, 4번째 전봇대 작업과 그 당시의 뜨거운 태양이 문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가족들이 사고 난 현장 사진을 보내줬지만 딱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조 지회장님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사건을 시작할 때인 가을에 1번, 서면을 거의 마무리 할 때인 겨울에 1번 갔습니다. 산쪽은 산이 깎인 부분이 있어서 나무나 그늘이 없었고, 반대쪽은 논으로 되어 있어서 그늘이 없는 곳이었으며, 마지막 사고난 지점의 현장도 그늘 하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거크레인 작업 실제로 보기
그늘이 없고, 당일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는 오거크레인 유튜브 영상만으로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조에 부탁을 해서, 실제로 작업현장을 따라다니면서 영상도 촬영하고, 사진도 찍기로 했습니다. 전봇대를 싣고 오거크레인 운전을 하면서 골목골목을 다니는 모습은 아슬아슬 하면서 묘기를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크레인을 고정시키고, 뒤에 있는 크레인 운전대에 올라가는 것은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젖히고, 전봇대를 피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간 날은 가을이었지만 한 여름이었다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제일 높은 곳에서 그대로 받는 위치였습니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와 건설기계에서 나오는 열기는 여름에 손만 대도 데일 것 같은 온도였을 것입니다. 오거크레인으로 땅을 파기도 하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기도 하는 모습도 직접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기를 다루는 부분과 14미터나 되는 전봇대를 움직이는 부분과 건설기계에 오르내리는 부분 모두 매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작업들이었습니다.
기존질환에 대한 평소 관리
고인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꼬박꼬박 병원에 다니면서 약도 드시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 내역을 보니, ‘뇌경색’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족들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치의사에게 물어봤는데, 다행히도 주치의사는 ‘뇌경색’ 진단을 한 것은 아니고, ‘뇌경색’ 진단을 해야지 처방이 되는 약을 복용해야해서 어쩔 수 없이 적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인이 평소 병원에 꾸준히 다니고, 투약을 하기도 했고, 운동도 열심히 했으며, 뇌경색은 진단됐던 것이 아니라 처방 때문에 적은 것이라는 내용의 소견서를 적어주셨습니다.
사용자와 합의
산재신청 준비를 거의 다 한 이후에 사용자를 만났습니다. 사용자는 산재라고 명확하게 이야기 해주기는 어렵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을 해준다면 그것은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산재신청을 하면 보험가입자 의견도 제출하게 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가족들과 상의해서 어느 정도 금액의 산재보상금 이외의 위로금을 지급받는 것으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를 대표해서 오신 상무님은 구두로 말한 것이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폭염’이 촉발요인이 된다는 자료들
업무시간, 스트레스에 대한 유해요인으로 과로성 질환이 발병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오로지 ‘폭염’에 의해서 기존질환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는 ‘촉발’요인을 주장해야 했습니다. 찾아보니, 고령자(고인은 만68세)의 경우 ‘폭염’에 의한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이 더 크다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당뇨’병인 경우는 ‘폭염’에 더 취약해져서 ‘당뇨’병이 뇌심혈관계질환을 촉발시킨다는 논문도 찾았습니다. 각종 연구보고서, 논문 등을 찾으니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사안에 맞는 부분을 선별하는 작업들을 하면서 업무 관련성의 근거들을 찾아갔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
고인은 오거크레인 운전/운행을 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산재신청을 하기 전에 어떤 의사선생님이 그거 힘든 일이 맞아요? 라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설노동을 하지만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사람이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뇌심혈관 조사 지침에 크레인 운전원은 ‘힘든(heavy)’ 업무로 되어 있고, 마지막 위험한 사례에도 ‘타워크레인’, ‘해상크레인’ 등 다른 유형의 크레인을 있다는 것을 찾았고, 관련한 내용을 산재신청을 하는 서면에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업무관련성 소견서 받기
산재 신청을 하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인 업무관련성 소견을 받으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직업환경의학과에 업무관련성 소견을 요청을 해서 받았는데, 직업환경의학과에서는 “혈중 Cr의 증가, 간기능 수치의 상승, 락테이트 수치의 상승” 등 “열사병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고, “폭염시 수행한 육체노동이 방아쇠 요인”이 됐다고 적어주셨습니다.
산재 신청
산재신청을 2024. 4.에 했습니다. 의무기록, 기상청자료, 각종 진술서 등 수백페이지 자료를 정리했고, 근로복지공단으로 보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3, 4개월이 넘게 걸린다고 이야기를 했고, 알겠다고 답을 하면서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추가자료 1, 2, 3 신청
산재신청을 하고도 계속 뭔가 더 정리해서 제출하면 유리할 것인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전기원은 절연기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들 보다 보호구가 더 두껍다는 내용을 어느 책자에서 읽게 됐습니다. 그래서 관련한 내용을 정리한 추가자료1을 5월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6월이 되면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폭염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칼럼과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칼럼 기사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기준 등을 정리해서 그늘을 보장하지 않은 상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상태로 위험한 상태에 해당하고, 햇볕과 그늘은 10도 정도 차이가 난다는 기사 등도 첨부하면서 추가자료2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6월말에 근로복지공단에서 질병판정위로 이관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는 구나 생각 했습니다. 그러고 노동조합에 탄원서 조직을 부탁했고, 노조에서는 수백명의 조합원과 주변 건설노동자들의 탄원을 받아서 보내줬고, 관련한 탄원서를 추가자료 3으로 제출했습니다.
질판위 당일 진술
산재 인정여부는 질판위에서 결정됩니다. 이전에 아무리 준비를 잘 했어도 여기에서 삐긋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7월중순까지 비가 계속 내려서 사람들이 더위를 못 느끼고, 질판위원들도 더위에 무감각해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질판위 당일은 본격적인 폭염의 시작인 날이었습니다. 저는 질판위 진술을 위해서 앞뒤로 1장짜리 고인의 업무에 대한 내용과 폭염의 내용을 정리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8.1.과 그 이전 1달 동안에 대해서 온도, 습도, 바람, 오거크레인 작업여부 등을 정리하고, 30도가 넘어가는 날은 굵은 글씨로 하고, 폭염경보가 있는 날은 음영처리를 하면서 보기 좋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와 연락을 해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을 하면 받아들이겠다는 보험가입자 의견서도 받아서 제출했습니다. 당일 질문과 진술을 짧았지만 오거크레인위에 파라솔이 있는 사진과 없는 사진 2개를 준비해서 사고 전에는 파라솔이 없었고, 사고 이후에는 생겼다는 설명을 하면서 ‘그늘’이 없어서 ‘폭염’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습니다.
산재 인정
질판위 며칠 이후에 산재 인정이 됐습니다. 쓰러지고는 1년이 조금 넘었지만 1주기 며칠 전에 인정이 돼서 다행이었습니다. 고령의 건설노동자가 폭염에서 쓰러졌고, 폭염 과로사로 인정된 것입니다. 폭염에는 일을 멈춰야 하는데, 현재 노동자들은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며칠 전 폭염 산안법이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작업중지권’이 빠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봅니다. 1년 ‘폭염’에 대해서 많이 봤고, 내가 그 오거크레인 위에 있다면 어떤 심정일지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폭염에 제일 많이 노출되고, 제일 힘든 노동자가 건설 노동자들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위험하니 안전보건을 챙기는 사업장도 있겠지만 열악한 환경의 현장은 노동자들에게 견딜때까지 견디라고 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워지는 세상에서 폭염에는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길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무더위에 곳곳을 옮겨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전기원노동자들에게 안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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